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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 1970년대 아시안게임 첫 2관왕과 2연패 달성 조오련 (1952년 10월 5일 ~ 2009년 8월 4일) 1968년 해남고등학교 1학년 수영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그 해 말에 자퇴서를 내고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시 종로구 YMCA 수영장 맞은편 간판집에 취직하여 끼니 해결하고 구두 닦는 아르바이트로 수영장 다닐 돈을 마련하여 수영을 한다 1969년 6월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예선에 참가 수영복도 없이 사각팬티만 입은 채 자유형 400m, 1500m 에 출전하여 모두 1위 경기가 끝난 후 서울 양정고 (55회) 에 스카웃되어 입학한다 이때 귀빈석에서 경기를 보던 민관식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조오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게 한다 민관식은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 (1964년 ~ 1971년) 대표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1969..
대한민국 최초 프리미어리거 탄생의 순간 박지성 (1981년 3월 30일)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 세류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차범근 축구상 장려상 수상 (세류초등학교 당시 등번호 7번 --> 교토퍼플상가에 입단 후 등 번호 7번으로 활약) 초등학생 때의 일기를 보면 어려서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안용중학교 당시 등 번호 13번 (이후 맨유에서도 등 번호 13번으로 활약) 1999년 1월 명지대 입학 이 때 김희태 감독에 눈에 띄어 마감된 축구부 인원 대신 테니스부 마지막 TO 를 빌려서 입학하게 됨 이 후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당시 대표팀 선수 3명을 제치고 골을 넣어 두드러진 활약을 보임 U-23 한국 대표로 뽑힘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 (AFC 아..